더러운 프랑스

데니스 보일스, 더러운 프랑스 (2005년, 엔카운터북스, 162쪽)

Denis Boyles, Vile France : Fear, Duplicity, Cowardice and Cheese
(2005, Encounter Books, $23.95)




이 책의 저자 데니스 보일스는 미국의 중서부 농촌에서 태어나서 존스 홉킨스 대학을 나온 시인이며 저술가이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 사회와 문화, 미디어에 관한 평론을 쓰고 있다.
‘공포, 이중성, 비겁함, 그리고 치즈’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프랑스가 오래 전부터 미국과 감정이 좋지 않았으며, 오늘날 프랑스 사회는 깊이 병들어 있다고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유머와 위트로 가득찬 이 책을 읽다 보면 파안대소(破顔大笑)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두개의 프랑스가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하나는 프랑소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같은 속물적(俗物的)이고 엘리트적이며 자기집착적이고 파리에 살고 있는 지배계층의 프랑스이다.
또 다른 프랑스는 지나치게 세금을 많이 내고 지나치게 규제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해 기대가 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다.
저자는 솔직히 자기가 보통 프랑스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적이고 교활한 프랑스 엘리트 계층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신생독립국 미국이 처음 치른 선전포고 없는 전쟁은 프랑스와 였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과의 교역을 방해하기 위해 미국 상선을 무차별 나포했고, 존 아담스 대통령은 선박 무장을 지시했다.
그러자 프랑스를 좋아 했던 토머스 제퍼슨 당시 부통령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반대했다.
제퍼슨은 프랑스 대혁명 후 일어난 광란의 폭동과 처형을 보고서야 비로서 프랑스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 났다.
대통령이 된 제퍼슨은 루이지애나 영토 구매에 관련해서 프랑스와 사이가 나빠지자 프랑스 군대의 상륙에 대비해서 병력을 증강해야만 했다. 미국에게 가장 오래된 적국은 다름아닌 프랑스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원정군을 보내서 프랑스를 도왔다.
당시 프랑스에 파견된 미군 장병들은 걸핏하면 하극상 반란을 일으키는 프랑스 군대와 후방에서 반전(反戰)폭동을 일으키는 사회주의자들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혼자 힘으론 승리를 결코 할 수 없는 프랑스 군대는 퍼싱 장군이 이끄는 미군 덕분에 간신히 독일군을 물리쳤다.
1차 대전에 미군을 참전시킨 조치는 우드로 윌슨이 저지른 많은 바보짓 중의 하나였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아주 짧았다.
마지노 방어선을 구축하고 들어가 있었는데, 독일군은 마지노 방어선을 돌아서 침공했고, 한달 후 프랑스는 항복했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나치에 기꺼이 협력했다.
르몽드의 설립자인 유베르 보브메리, 프랑소와 미테랑 등 좌파 지식인도 마찬가지였다.
사르뜨르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서 나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수정주의에 물든 프랑스의 역사는 근거 없는 프랑스 우월주의를 전파시켰다.


프랑스의 언론은 정부 지원금이 없으면 당장 쓰러지게 돼있다.
그 대가로 모든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의 근거없는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를 지지하는 뉴스만 게재한다.
가톨릭계 신문인 라 크로아(La Croix)지(紙)의 알랑 에르또그는 이라크 문제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보도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내용의 책을 2003년에 펴냈다가 반역자 같은 취급을 받고 신문사를 그만 두었다.
가장 권위적이라는 르 몽드(Le Monde)도 독자적인 언론정신을 갖고 있지 못하며, 좌파적인 풍자 신문인 까라르 앙샹(Canard Enchaine)이 그나마 사실을 쓰는 편이다.

프랑스는 신문을 읽지 않는 나라이다.
인구가 6000만인 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르 몽드가 40만부, 그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리버라치옹(Liberation)이 20만부를 찍고 있다.
프랑스의 기자들은 노조의 영향을 받고, 프랑스 신문의 가판대(街販臺)는 독점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경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르몽드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고 다른 신문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들의 살길은 오직 정부의 보조금 뿐이다.



자크 시라크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그토록 반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프랑스가 무기 등 판매대금으로 후세인으로부터 받을 돈이 4억 달러나 됐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후세인의 군대가 미영 연합군에 의해 그토록 무력하게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못했다.


프랑스는 과거에 그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서 특별한 권한이나 있는 듯이 행세해 오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가 식민종주국으로 간여했던 지역은 완전한 지옥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내란으로 80만 명이 희생된 르완다 내전도 프랑스가 학살을 감행한 정부군에 무기와 자금을 원조했기 때문이다.
부족간에 내란이 일어난 코트 디브아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이 나라가 과거에 그들의 식민지였음을 이유로 유엔의 승인을 얻어 군대를 보냈지만 프랑스 군대는 부족간 내란의 와중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콩고에 파견된 프랑스 군대는 현지의 청소년들과 매춘을 즐겼음이 영국 신문에 의해 뒤늦게 폭로됐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하는 ‘예종(裔從)의 길’(Road to Serfdom)이 적절하게 들어 맞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선 지배계층 엘리트가 이끄는 관료제는 근로자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전후에 세워진 국립행정대학원(ENA)은 프랑스의 지배계층의 내적(內的) 네트워크의 초석이다.
ENA 출신은 프랑스의 관료사회와 공기업의 노른자위를 장악하고 있다.
거대한 관료제는 거대한 프랑스식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문제는 프랑스인들의 출산율이 떨어져서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오늘날 그나마 아이를 낳는 프랑스인은 아랍계 무슬림 프랑스인들이다.
기독교인인 프랑스인 중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2%뿐이고 100%는 피임과 가족계획을 한다.
반면 무슬림 프랑스인들은 100%가 매주 금요일 모스크에 나가고 2%만 피임을 할 뿐이다.
21세기 말이면 프랑스는 무슬림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미국을 향한 프랑스의 전쟁은 양상을 달리 할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전체 인구 중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략 인구의 15% 또는 1천만 명이 무슬림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에는 미국과 같은 인종차별이 없고 프랑스에는 프랑스인만 있다고 주장하지만, 무슬림 프랑스인은 도무지 프랑스인처럼 생기지가 않았으니 그것이 문제다.
무슬림 여학생들이 학교에 올 때 머리에 스카프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호들갑을 떤 웃기는 일은 프랑스 정부는 항상 중요하지 않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무슬림 여학생과 여성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학교와 직장에 오는 문제는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논란을 야기해 왔다.
그런데 2003년에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어서 별안간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이 온 나라가 시끄러워 졌다.
무슬림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머리 밖에 두른 스카프가 아니고 머리 속인데도 시라크 대통령은 “무슬림의 베일은 공격적인 측면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여권론자들이 “베일은 여성의 예속을 상징한다”고 나섰다.
정부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이 문제를 다루었고, 결국에 스카프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를 가장 피상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하는 프랑스 정부의 탁월한 능력이 다시 한번 발휘된 셈이다.
여하튼 간에 프랑스는 급속히 이슬람화 되어 가고 있고, 그런 탓으로 유태인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과 모욕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가족은 프랑스 문화에 있어 더 이상 중요한 조직이 아니다.

프랑스에선 아이가 두 살만 되면 탁아소란 공립학교를 가고, 일곱 살이 되면 하루에 11-12시간을 공립학교에서 보낸다.
프랑스에서 부모 노릇은 이제 관념적인 일이 되고 말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아이를 갖도록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프랑스인들에 있어 육아는 더 이상 그들의 일이 아니다.
유난히 더웠던 2003년 여름은 프랑스의 가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파리 사람들은 8월이 되면 파리를 외국 관광객에게 넘겨 주고 파리 보다 더 더운 남부 프랑스로 긴 휴가를 떠난다.
프랑스인들은 한 주일에 36시간 일한다고 하지만, 3일 연속 휴일이 많고 휴가가 길어서 일년 내내 휴가를 지내다가 간간히 일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3년 7월 28일, 무더위가 닥칠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접한 프랑스 응급의료협회장은 여름 휴가 중에 응급실의 수용능력이 25-30%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시라크 정부의 장 프랑소아 마띠 보건장관은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부터 휴가를 가버렸다.
8월 1일, 열파(熱波)가 파리를 덮쳤고, 8월 4일에는 파리의 최고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었다.
월 4일 하루 동안 300명 이상이 더위로 사망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80세가 넘은 노년층이었다.
8월 5일에 열파는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됐고, 의식을 잃은 노인들을 실은 응급차가 병원으로 몰려 왔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는 병원 응급실은 더 더워서 노인들은 거기서 죽어나갔다.
8월 8일 하루에만 1,000명 이상이 더위로 죽었다.

8월 10일, 마띠 보건장관은 화를 내면서 프랑스의 사망률은 전과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8월 12일 하루에 또다시 2,200명이 죽어서 희생자가 10,000명을 넘었다.
야당인 사회당이 정부의 무대책을 비난하자, 라파링 총리는 남부의 휴가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런 주장은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8월 13일에 2,000명이 사망하자 마띠 장관은 비로소 휴가를 중단하고 파리로 올라왔다.
8월 14일, 마띠 장관은 이제까지 더위로 죽은 사람은 3,000명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더위로 죽은 사람은 12,000명을 넘어섰다.
8월 16일이 되자 기온이 떨어졌다.
8월 17일, 마띠 장관은 상황이 수습됐다고 발표했고, 8월 20일 라파링 총리는 정확한 희생자 숫자를 파악해서 한달 내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8월 21일, 오랜 휴가를 다 보낸 시라크 대통령이 검게 탄 몸매를 자랑하면서 TV에 나와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파리 시장은 병원 안치실에 보관되어 넘쳐 나는 시체들을 연고자들이 찾아가 달라고 방송에 나와서 호소했다.
프랑스 정부는 반년이 지나서 15,000명이 죽었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80이 넘은 노인들이었다고 인정했다.
프랑스 정부는 또 다시 그런 열파가 오면 노인들은 응급실로 오지 말고 에어컨이 있는 영화관으로 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자는 프랑스는 그 자체가 위선(僞善)과 반역(叛逆)의 역사이고, 21세기에 프랑스는 자신의 역사와 정치에 의해 침몰되어 사라질 것이고, 실제로 프랑스를 잘 관찰하면 프랑스는 이미 항복을 했음을 알게 된다고 결론 내린다.

by 인민해방군 | 2009/04/15 10:22 | 해방과 세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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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녹두장군 at 2015/12/14 14:25
좌빨들이 장기간 집권하면 다 저렇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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