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이 주부를 노리는 이유

페미니스트들이 주부를 노리는 이유
- 필리스 쉴라플라이, 1998
지난 30년을 놓고 볼 때 우리 문화를 위해 진정 필요한 책이 뭐였냐고 묻는다면 캐롤린 그라글리아(Carolyn Graglia)가 저술한 “가정의 평화(Domestic Tranquility)”를 들 수 있겠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도서관 서가들에 잔뜩 쌓여있는 지겹도록 장광설을 늘어 놓는 삼류 싸구려 페미니스트 작가들 책이나 대학교재랍시고 억압이 어쩌고 하는 소리나 늘어 놓는 쓰레기들이 아닌 바로 캐롤린 그라글리아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페미니즘을 학구적으로 간략하게 비판해 놓은 그러한 책이다.
그라글리아 여사 덕분에 우린 페미니스트 사상을 주입하는 소위 여성학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 지겨운 책들하며 한심한 논증 따위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저들 사이비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의 온갖 넋두리들을 모아서 그 천방지축으로 두서없는 이데올로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서는 그 속임수와 허위주장들을 철저하게 깨부셔 놓았거든.
그라글리아 여사는 저들 페미니스트들이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는 천박한 짓거리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저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장바닥에서 여자들도 동등하게 대우해달란다거나 똑같이 기회를 줘야한다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일거리를 만들어 낸다든가 다양한 삶을 꿈꾼다든가 하는 거는 더더욱 아니고.
페미니스트들이 노리는 바는 바로 전업주부의 역할을 싹 지워버리는 것이다.
볼품없고 경제적으로도 무가치하며 진짜 비합리적이란 식으로 매도하면서.
심리적 측면에서는 하챦은 존재로,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재정적으로 전혀 도움되지 않는 존재로 깎아 내려 전업주부라는 존재를 깔아 뭉개버릴려고 하고 있다.
왜 저래야만 할까?
어쨌든 저들 출세에 목을 맨 페미니스트들 입장에서는 이제 아예 법으로도 차별보정을 하도록 해놓았겠다, 다른 여자들이 얼쩡거리지 않으면 경쟁도 줄어들 거고, 그럼 더욱 좋지 않겠는가?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페미니스트 이데올로기라는 게 어떤 건지 알면 그런 소리 못한다.
요 페미니스트들, 이 장바닥에서 지들이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전업주부가 집에서 버티고 있는 남자들하고는 대등한 게임이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왜냐고?
이 주부들, 밥상 차려 주지요 애들 돌봐주지요 온갖 경쟁이 난무하는 바깥세상에서 돌아오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 만들어 주지요, 게다가 남자들은 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또 일은 얼마나 열심히 하겠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자기네들이 출세길에서 성공할려면 이 수컷 경쟁자들로 하여금 마눌 덕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 페미니스트들, 가정주부란 주부는 모조리 집 밖으로 몰아 내서 노동시장에 집어 넣겠다고 작심하게 된 거다.
이 가정주부를 향한 페미니스트의 적개심을 보면 러시아의 한 우화가 떠오른다.
보리스는 거위 한 마리를 가지고 있고 이반에게는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착한 요정이 나타나서 이반한테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겠다고 말을 했다.
이반의 소원: 보리스가 가지고 있는 거위를 죽여주세요.
그라글리아 여사는 페미니즘을 종합적으로 해부하면서 그 기만적이고도 모순되는 바를 고대로 밝혀 놓았다.
전통적인 가족상을 훼손시키면서 남편이 생계를 맡고 주부가 가사를 책임지는 가정은 예외없이 싸그리 짓밟으려고 하는 더럽고도 냉혹한 전쟁을 벌이는 그들 모습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면서.
페미니스트가 채택하고 있는 책략 중에는 남편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뒷다리를 걸면서 그들의 처에게는 굴욕감을 느끼게 해 그들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에서 양자 모두가 불행해지도록 만들어 버리는 술책도 포함되어 있다.
페미니즘이 목표하는 바가 실제 모든 여자들을 노동시장에 몰아 넣는 것이다 보니 전통적인 가정주부의 재정적 기반을 잠식하고 자기가치를 망가뜨릴려고 기를 쓰는데 그 방법론으로 동원한 것이 재정적 기반을 잠식하는 수단으로는 이들에게 불리하게 법을 바꿔버리고 자기가치를 훼손하고자 할 때는 욕설을 늘어 놓으면서 매도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 줄곧 주부의 긍지를 훼손시키는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하고 있는데 돈벌어 오지 않는다고 기생충이라 하질 않나, 아이나 키우는 일에 전념하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는 노력일 뿐이라 하고, 성인으로서의 능력, 지성을 내 팽개치고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조롱해댄다.
그라글리아 여사가 절묘하게 설명했듯이 아직 사랑과 로맨스를 경험할만큼 자라지 못한 젊은 여자들한테 페미니즘이 끼친 영향은 극적이었다.
수천명에 달하는 미국 여인들이 이 비극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었던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걸 정서적으로 방어하고 정당화해야만 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1989년 1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회합에서 경제학자이자 사회이론가렸던 죠지 길더(George Gilder)가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자들로 하여금 20대와 30대 초기에 직장에서 남자들과 격렬한 경쟁을 하면서 출세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꼬드기고 있는지 설명했었는데 그러면서 나이 40에 이르러 이제 출세와 사랑 “그 모두를 갖고자” 원한다면 그 때가서 결혼을 생각해도 늦지 않은 거라고 했댄다.
하지만 여자가 그 나이에 이르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무척이나 힘들 뿐만 아니라 설혹 한다고 해도 원하는 남자를 만나기는 이미 틀려먹은 것을 어떻게 하나?
길더는 보육/탁아에 대한 논쟁도 본질적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의 실수를 감추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70년대와 80년대에 미국 여인들 수백만명이 저질렀던 그 끔찍한 잘못을 여론에 맡겨 호도하려고 하는 짓이라는 거다.
이 페미니스트들이 저지른 실수를 확인해보고 싶으면 저들 페미니스트들 자신들을 한 번 돌아보면 된다.
극렬하게 홀로서기를 주창하면서 적극적으로 성을 탐닉했던, 그러면서 여러 애인을 거느리고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출세길에 방해가 된다고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모성을 부정했던 이 신여성(new women)들의 표상이라 할 만한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 그녀가 40을 넘긴 뒤 영국의 잡지 아우라(Aura)에 기고한 글을 보라.
“아이가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빈 말이 아니다. 내가 병원에 다니면서 모아 놓은 청구서를 보여줄 수도 있다. 여전히 임신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내게는 결코 다가오지 않을 꿈일지언정.”
“생체 시계가 있는데도 없다는 식으로 굴지 마라. 시간은 흘러가고, 그러면 문은 닫힌다.”
뉴욕타임즈 편집인 조이스 푸닉크(Joyce Purnick)가 바나드 대학 졸업식장에서 연설하면서 한 말이다.
아이가 갖고 싶다고 느낄 때, 그 땐 이미 늦다.
케롤린 그라글리아는 또 페미니스트들이 정숙함이니 처녀성이니 하는 것들을 내다버리고 결혼할 때까지 성적 추구등을 미루도록 하지 못하게 젊은 여자들을 꼬드긴 결과가 어땠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피리로 쥐떼를 꼬여내고 아이들을 꼬여내었던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람이 했듯이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대체가능한 존재라고 믿게 만들었다.
작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엌, 보육원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침대 위에서까지도.
여성해방은 여자도 남자처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즉흥적인 섹스도 해야하고 그를 즐겨야만이 얻어질 수 있는 거란다.
문학, 오락, 교육 등이 양성인간적으로 흐르다 보니 미국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배우자될 사람의 마음에 들고 또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기 위해 서로 변하지 않는 책임을 어찌 키워나가야 할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좋지 않은 일이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을 놓칠 수 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라글리아 여사가 페미니스트 이론과 행동을 분석해 놓은 것을 보면 기가 찬다.
그래도 희망적인 한 마디를 덧붙이고 있다.
여자들은 와그너의 브룬힐데처럼 결국 여전사로서의 면모를 버리고 지그프리드와 같은 고상하면서도 용기있고 씩씩한 남자의 품에 안겨 인생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거라는.
나의 기쁨, 나의 보물, 나의 세상, 내가 가진 단 하나 하지만 그 모든 것! 하면서.
그라글리아 여사는 주부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이 일터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더 보람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상함을 재발견하고 여성다움을 깨우치며 부부애가 가져다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평생을 함께하는 보람을 누리도록 권유한다.
그러면 오늘 날의 젊은 여성들이 주변의 동료들 그리고 미디어에서 끈질기게 압박을 가하면서 그토록 사납게 몰아부치는 페미니스트 운동의 망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현자가 말하기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들 뿐이라고 했다.
하나는 타인들의 잘못으로 득을 보는 자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집스럽게 자신들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라고.
젊은 여성들은 조지 길더가 쓴 “남자, 그리고 결혼(Men and Marriage)”을 읽어보고 심리적 무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남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여자를 이해하려면 캐롤린 그라글리아의 “가정의 평온(Domestic Tranquility)”을 읽어 보고.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건전한 판단력을 갖추도록 해주는 강력한 무기이니까.
전통적인, 그러면서 가족을 사랑하는 여성은 구태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잘 다듬어진 가치있는 존재이니. 신을 믿고 가족을 위해 봉사하며 우리가 운좋게 살아가고 있는 이 위대한 나라에 감사할 줄도 잘 알고.
자기 만족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서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을 빼뜨리는 짓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페미니스트들이야 늘상 하는 짓이겠지만.
이 기회가 가득찬 미국 땅에서 여성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백일몽” 중에서

null

by 첩보원 | 2007/03/22 21:53 | 양성평등과 해방 | 트랙백(1)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plarmy.egloos.com/tb/939161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I hope to se.. at 2010/12/25 21:35

제목 : 흠.
페미니스트들이 주부를 노리는 이유한번 봐야겟군...more

Commented by 백범 at 2009/07/24 20:18
미국은 그나마 그렇게 되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마 일본처럼 가게 될겁니다. 남자나 여자나 서로에게 끌림이나 흥미를 못느끼고 혼자 살다가 혼자 늙어서 그렇게그렇게 골골골...

(미국처럼 쿨한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순종, 질서, 권위에 따르는 순종형인간도 아니고, 우리나라는 그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완고한, 그러면서 고삐풀린 망아지같은 인간들이 사회주변에 너무 많아서...)
Commented at 2009/07/24 20:32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